느리게 사는 삶이 준 여유 덕분에 ‘내 안의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것 같아요. 제주로 오면서 벌이는 줄었고 관광지의 비싼 물가를 감당하며 사는 것이 때때로 걱정되기도 하지만, 적게 벌어 적게 쓰고 비싼 입장료 내는 관광지 대신 오름 완주, 올레길 완주, 밤바다 수영, 반딧불 구경 등 제주도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답니다. 덕분에 하루하루 풍족한 삶을 살고 있어요.

  • 소박한 삶을 엮어서
  • 소박한 삶을 엮어서

    ‘어디서 본 듯한데, 저게 무슨 바구니지?’

    네베르스로이드(Näverslöjd), 자작나무 껍질을 뜻하는 ‘네베르’와 공예를 뜻하는 ‘스로이드’를 합친 스웨덴어로,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처음 사용했을 거예요. 저는 원래 인테리어 디자이너였어요.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하다 귀국해 핸드 크래프트 생활용품 숍 ‘까사라이크’를 열었는데, 북유럽에서 시작된 자작나무 껍질 공예를 알게 됐죠. 숍에서 판매하고 싶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샘플 구하기도 어려웠어요. 일본에 클래스가 있어 한 달에 한 번씩 수업을 들으러 비행기를 탔습니다. 꼬박 2년을요. 네베르스로이드에 대해 조사하고 배우는 동안 점점 더 그 매력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토록 원하던 걸 내 손으로 만들게 돼 좋았고, 나중에는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웠어요. 2018년, 공방 ‘카나비요르크’를 열고 클래스를 시작했습니다. 네베르스로이드를 소개하는 책도 내고 전시도 했어요. 라탄 공예나 우리나라의 죽공예가 선(線)을 활용한다면 네베르스로이드는 북유럽 노르딕 패턴인 면(面)으로 격자를 짜는 공예입니다. 일상에서 쓰는 바구니, 가방을 주로 만들고 수납용 소품도 가능하죠. 나무껍질은 딱딱할 것이라 흔히 생각하는데요 네베르스로이드의 장점은 부드러운 견고함이에요. 탄성이 있어서 만져보면 마치 부드러운 가죽 같아요. 전용 주걱과 집게, 가위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서 더 좋아요. 자작나무 껍질을 채취할 때 벌목은 하지 않아요. 나무에 해가 되지 않는 시기를 골라 전문가에 의해서만 정해진 곳에서 합니다. 스웨덴 사람들이 자연과 공예를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네베르스로이드, 바구니를 짜는 행위는 단순하지만 그 자체가 자연과 어우러지는 과정이며 우리의 삶과 환경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도록 이끌어 줘요. 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고단한 즐거움

고단한 즐거움

촌에 산다. 주소는 ‘리’로 끝나는 면 소재지. 서울의 동쪽 끝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걸리고 빅맥을 먹으려면 전철로 40분은 가야 한다. 치킨 배달을 시키면 반 마리 가격을 넘는 배달료를 지불하거나 그마저도 배달 기사가 없으면 포기한다. 외식 메뉴를 집에서 만들기 시작한다. 장을 보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니 어지간한 채소, 허브는 길러 먹는다.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품종인 에어룸토마토는 5년쯤 계속 키울 수 있다. 고수도 심었다. 그 자리에서 알아서 나고 자라는 순둥한 성격이다. 고수가 무성해지면 태국 요리를 한다. 바질이 자라면 페스토를 만든다. 이제 막 올라온 아스파라거스와 덜 여문 완두콩의 단맛은 마트에서 파는 제품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여름, 상추와 풋토마토가 무럭무럭 자라 우리 네 식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장아찌를 담가둔다. 풋토마토 장아찌는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어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선물하면 몇 년을 두고두고 고맙다고 한다. 재료가 좋으니 요리 실력은 적당히 묻어간다 꽃시장까지 왕복 3시간, 꽃 쇼핑은 무리라 꽃도 키운다. 절화(切花)용 씨앗을 구해 심고 삽목(꺾꽂이)도 해 정원을 만들었다. 꽃이 피면 툭툭 잘라 화병에 꽂고 선물도 한다. 흔히 보던 꽃이 아니니 다들 좋아한다. 시골 꽃다발을 받아 들고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 괜시리 뿌듯하다. 계절마다 제각각 색을 달리하는 꽃들의 예쁜 정원은 덤이다. 물론 꽃시장의 꽃처럼 때를 맞춰 구색이 갖춰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때 피는 것도 아니다. ‘이 꽃과 저 꽃을 함께 꽂으면 예쁠 텐데’ 싶어도 언제 꽃봉을 언제 열어줄지 모르니 기다리는 수밖에. 새벽이면 물시중을 들고 새로 핀 꽃을 잘라 화병을 채우고 식탁 위에 얹는다. 그리고 마시는 커피 한 잔. 시골살이의 고단함과 불편함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 6년째 제주살이 중입니다
  • 6년째 제주살이 중입니다

    6년 전 남편의 이직으로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로 왔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5세, 8세의 아이들과 장기 여행에 대한 로망을 실현하게 됐다며 설렜죠. 제주에 오자마자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손을 잡고 숲길을 산책하듯 학교에 데려다줬습니다.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과 꽃잎을 만지며 웃고 말을 거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어요. 테라스에서 바다와 노을이 보이고 10분 거리에 올레길이 있어, 육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하루하루 숨 가쁘게 지내던 때와 달리, 노을이 유독 예쁜 날엔 장 보러 가다 말고 차를 돌려 바다로 향하면 남편도 바다로 퇴근합니다. ‘오늘’과 ‘지금’을 소중히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전세로 딱 2년만 지내다 갈 생각이었는데, 여행자로서의 제주가 아닌, 삶의 제주 속을 샅샅이 누비다 보니 점점 더 그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세로 딱 2년만 지내다 갈 생각이었는데, 여행자로서의 제주가 아닌, 삶의 제주 속을 샅샅이 누비다 보니 점점 더 그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벌레가 너무 싫어 주택에서는 결코 못 산다 하던 우리 부부는 제주살이 3년 차에 더 시골인 애월읍 수산리의 잔디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들어왔습니다. 벌레와 곤충에 꺅꺅 소리치던 저와 딸은 이제 멋지게 지어낸 거미줄 건축을 보며 ‘우리 집이 아니라, 우리가 얘네들 땅에 들어와 살게 된 거지’라고 합니다. 작은 텃밭도 가꾸게 됐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부지런히 잡초를 뽑아가며 키운 농작물 파치를 저희 집 문 앞에 걸어두곤 하시는데, 저도 이웃들과 나눠 먹는 삶을 누리고 싶었거든요. 아이들이 수확해온 텃밭 재료로 샐러드를 준비하고 집에서 구운 빵을 곁들입니다.

이제 첫째는 6학년, 둘째는 3학년입니다.

이제 첫째는 6학년, 둘째는 3학년입니다. 처음 제주로 이주했을 때 할머니, 이모, 고모들이 보고 싶다던 아이들은 이제는 육지에 가기 싫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마을버스 타고 바다와 곶자왈에 가며 계절마다 마당에 심은 과일을 따 먹으며 불멍을 하고, 함박눈이 내리면 집 옆 언덕길에서 타는 눈썰매가 더 즐겁고 재미있다고 해요. 육지 아이들에 비해 학원 하나 덜 가고 자유 시간이 많아진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노는 모습이 어찌나 기특한지요. 느리게 사는 삶이 준 여유 덕분에 ‘내 안의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것 같아요. 제주로 오면서 벌이는 줄었고 관광지의 비싼 물가를 감당하며 사는 것이 때때로 걱정되기도 하지만, 적게 벌어 적게 쓰고 비싼 입장료 내는 관광지 대신 오름 완주, 올레길 완주, 밤바다 수영, 반딧불 구경 등 제주도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답니다. 덕분에 하루하루 풍족한 삶을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