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지는 공방에 재즈가 흐른다. 흙과 불이 만나는 도예가의 작업실에 빗소리가 스미고, 촉촉한 공기 사이로 향이 피어오른다. 심진태 도예 작가는 자연의 풍경, 온도, 습도를 오롯이 받아들이며 도자기를 빚는다. 우아하면서 강직하고, 거칠면서도 유려한 그의 작품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음악 덕분일까요. 전망 좋은 2층에 자리한 도예가의 작업실 이 한층 낭만적으로 다가옵니다.

음악 덕분일까요. 전망 좋은 2층에 자리한 도예가의 작업실이 한층 낭만적으로 다가옵니다.

처음으로 마련한 저만의 독립 작업실이에요. 2015년 4월 말에 입주했는데 탁 트인 테라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정말 좋았죠. 오디오를 세팅해두고 한 달 동안은 음악만 들으며 보냈어요. 어느 때보다도 꽉 찬 시간이었죠. 평소 음악을 들으며 작업하기 때문에 오디오 시스템에 공을 들였어요. 1930~1950년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라면 더할 나위가 없죠. 주로 생활자기를 만들기 때문에 작업실은 그리 크지 않아요. 덕분에 2층에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헤이리에 터를 잡은 이점을 살려 쇼룸을 겸한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작업실을 구성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제품을 주로 온라인으로 판매하니 누가 내 작품을 좋아하는지, 어떤 부분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한편에 쇼룸을 만들면 좋겠다 싶었죠. 실제로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무심히 지나치는 모습이 흥미롭더라고요. ‘취향은 참 다양하구나’를 느끼며 자극을 받았어요. 열린 공간이지만 작업할 때는 커튼을 치고 외부와 차단해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물론 음악은 예외고요.

  • ‘1250℃’라는 브랜드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 ‘1250℃’라는 브랜드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도자기를 구울 때 흙의 성질이 바뀌어 도자기로 변화하는 온도인데요. 이 온도에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브랜드 이름을 짓는데만 6~7개월은 고민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윤종신의 ‘이별의 온도’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는데, ‘과연 도자기의 온도는 몇 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도예를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1250℃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흙이 자화되는 온도거든요. 변화에 다다르게 하는 온도라니, 근사하지 않나요. 이거다 싶었죠. 늘 변화할 수 있도록 저를 깨워주는 온도라고 생각합니다.

1250℃를 통해 선보이는 작품은 정형화되지 않으면서도 상당히 절제된 모습입니다. 생활자기이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존재감을 지닌다고 할까요.

맞아요. 1250℃가 추구하는 방향이 주방 찬장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어디든 무심하게 놓아도 그 자체로 멋스러운, 오브제의 가치도 함께 품는 작품입니다. 입자는 거칠지만 선과 색은 부드럽고, 비정형의 형태지만 간결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작품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형태만 보고 여성 작가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질감은 거친 편이죠. 기능적으로도 문제가 없도록 견고하게 마감하고요. 무엇보다 작가의 손길을 그대로 느낄 수 있죠. 얼마나 힘을 주느냐에 따라 질감과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지거든요.

작품을 만들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흙과 유약의 조합이 늘 고민이에요. 아주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질감과 색이 달라지니까요. 현재 작업하는 작품은 대부분 무광으로 최대한 매트한 질감을 살리고 있거든요. 이게 장식용이 아니라 테이블웨어로 쓰이기 때문에 색이나 냄새가 배지 않도록 처리하는 과정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최대한 얇으면서도 견고하도록 계속해서 흙과 유약의 새로운 조합을 연구하는데, 그 배합을 적어둔 노트를 보면 거의 과학 일지예요. 디자인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죠. 사실 흙은 물성이 다루기 쉬워 조금만 주물주물하면 디자인을 쉽게 베낄 수 있어요. 유행에 따라 비슷비슷한 제품이 쏟아지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1250℃만의 개성과 디자인을 담아내려 고심하죠.

  • 가구를 전공하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다 도예가의 길로 방 향을 바꿨습니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도예의 매력이 새롭게 다가왔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 가구를 전공하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다 도예가의 길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도예의 매력이 새롭게 다가왔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도예는 예측불허의 매력이 있어요.

    끊임없이 실망하고 기뻐하는 과정의 반복이랄까요. 머릿속에 그린 대로 반듯하게 만들어도 가마에서 나오기 전까지 그 형태를 완벽하게 예측하기 힘듭니다. 뒤틀리는 모양 변형은 물론 색도 예상을 벗어난 경우가 많거든요. 아, 여기서 내가 힘을 덜 줬구나, 이 유약은 안 맞구나 반성을 하는 거죠. 그러다 제대로 구워진 작품을 만나면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흙과 치열하게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생각보다 역동적인 작업이 많은데 체력 관리도 중요해 보입니다.

흙의 밀도를 높여 견고함을 더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계속해서 만져야 합니다. 손목과 허리에 무리가 많이 오죠. 몸의 긴장을 풀기 위해 산책을 즐기고 있고, 최근에는 캠핑을 시작했어요. 불편함 속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매력이 있더라고요. 건강식품도 잘 챙겨 먹어요. 예전에는 정관장의 에브리타임을 주로 먹었는데, 최근에는 천녹도 즐겨 먹고 있습니다. 체력을 받쳐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늘 변화하고 싶어요. 작품이나 브랜드가 힘을 잃지 않도록 말이죠. 지금처럼 매일 매일 작업에 몰두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