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에서 오가는 치열한 승부수. 거친 몸싸움도, 우렁찬 포효도 없지만 손끝을 떠난 흰 돌과 검은 돌의 수 싸움은 맹렬하다. ‘정관장 천녹’ 바둑팀이 2022-2023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서 준우승을 거둔 여정도 마찬가지. 이들이 전하는 바둑의 묘수와 묘미를 만나본다.
끝까지 잘 싸웠다.
‘정관장 천녹’ 바둑팀(1지명 변상일 9단, 2지명 홍성지 9단, 3지명 김정현 9단, 4지명 권효진 6단, 5지명 허영락 4단)은 2022-2023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3전 2승제)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2개의 리그(수담리그, 난가리그)로 진행되는 정규리그에서 양대 리그를 통틀어 가장 높은 승률(13승 3패)을 자랑하며 1위(수담리그)에 올랐다. 최명훈 감독이 이끄는 ‘정관장 천녹’ 바둑팀의 저력을 보여주는 성과다. “작년 12월에 선수 선발을 마쳤는데 한국 랭킹 3위 변상일 주장을 필두로 노련미를 갖춘 홍성지 9단, 김정현 9단, 신예 권효진 6단, 허영락 4단이 합류해 신구 조화가 잘 이뤄졌습니다. 사범 개개인의 기술력이 뛰어나 압도적인 성적으로 수담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정관장 천녹’팀은 선수 선발 당시에 큰 기대를 받지 못했지만, 선수 개인 역량을 일찌감치 알아본 최명훈 감독은 자신이 있었다. 국내 대회는 물론 세계 대회인 춘란배 우승까지 거머쥐며 상승세를 탄 변상일 9단이 중심을 잘 잡아주었고, 수읽기에 능해 전투 바둑에 강한 김정현 9단의 노련미가 힘을 더했다. 신인상에 빛나는 권효진 6단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플레이는 팀에 활력을 더하는 요소가 됐다.
특히 이번 시즌에 신설된 에이스결정전에서 ‘정관장 천녹’ 팀은 전승 쾌거를 거뒀다. 팀 스코어가 2:2로 끝날 경우, 양 팀에서 한 명씩 출전해 초속기 대국을 펼치는 에이스결정전은 박진감 넘치는 승부가 관전 포인트. 각자 제한 시간 1분이 지나면 20초 안에 둬야 하는 초속기 대국인 만큼 빠른 판단력과 집중력으로 승부가 갈린다. 이에 변상일 9단이 6승, 김정현 9단이 1승을 거두며 ‘정관장 천녹’ 팀은 7전 전승을 기록했다. 바둑 유망주를 만날 수 있는 퓨처스리그(1지명 이연 5단, 2지명 김승진 3단, 3지명 최정관 2단)에서는 짜릿한 역전승으로 1위에 올랐다. 아슬아슬한 고비가 많았던 순위결정전에서 뒷심을 발휘한 ‘정관장 천녹’ 팀은 반집으로 승부를 갈라 2017, 2018시즌 우승 이후 4년 만에 퓨처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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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대국, 끈기와 체력은 필수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은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승부는 모두가 알다시피 알파고의 4:1 승. 알파고가 바둑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는 간단하다. 쉽게 예단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7년이 흐른 2023년, 바둑판 위 인간의 두뇌 싸움이 여전히 뜨거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이제 바둑 기사들의 훈련을 돕는 수단으로 역할을 다한다. 무엇보다 바둑에 사활을 건 젊은 바둑 기사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번 시즌 신인상을 받으며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권효진 6단은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고, 퓨처스리그에서 10승 1패로 다승왕에 오른 이연 5단의 패기도 만만치 않다. 두 사람 모두 올해 열아홉이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바둑은 인공지능의 파도에도 여전히 굳건 하다. 포석을 연구하고, 사활을 풀고, 복기를 거듭하며 익히는 바둑의 묘미를 인공지능은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주 앉은 상대와 침묵 속에서 주고받는 에너지는 수 싸움을 능가하는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렇기에 최명훈 감독은 끈기, 기억력, 체력이 모두 갖춰져야 좋은 대국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얼핏 정적인 대결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대국이 장시간 이어지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 실제로 변상일 9단은 계단 오르내리기와 맨몸 운동을 통해 체중 감량은 물론 기초 체력을 올렸고, 김정현 9단은 테니스, 달리기, 헬스 등으로 몸과 마음을 꾸준히 단련하는 중이다. 또한 정관장 에브리타임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에너지를 채우는 데 도움이 돼 모두가 즐기는 건강기능식품으로 꼽힌다. 최명훈 감독은 이번 시즌 준우승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시즌을 기약한다. 목표는 물론 우승이다. 선수와의 화합, 한 수의 기술력, 탄탄한 체력까지 겸비한 ‘정관장 천녹’ 바둑팀의 건강한 승부수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